네이버 카페 '지성아빠의 나눔세상' 에서 제가 2021년부터 연재하던 글입니다.
여기로 복사해서 옮겨옵니다.
다수확 농사비법? 이런 것은 아닙니다.
농사짓는데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생각되지만
읽고나면 뭔가 도움이 된 듯한, 그런 이야기를 적어 보려고 합니다.
내용이 이어지는 연재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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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름 >
▶ 「걸다」 라는 우리말이 있습니다.
기름지고 양분이 많다는 뜻입니다.
"논이 걸어서 벼가 잘 자란다."
"퇴비로 땅을 걸게 만들었다."
이렇게 사용됩니다.
여기서 사용되는 걸다 의 어간 '걸-'에 '-음'이 붙어서 '걸음'이 되고 '거름'이라고 바뀝니다.
땅을 걸게 만드는 물질은 전부 거름입니다. 거름은 순 우리말 입니다.
⊙ 거름이란
농작물이 잘 자라도록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영양물질을 말합니다.
옛날에
거름을 만드는 일은 풍성한 가을걷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거름을 충분히 만들지 못하면 밥을 굶어야 했습니다.
주위의 모든 것을 거름으로 만듭니다. 거름의 재료는 놔두면 썩는 것, 불에 타는 것들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유기물이죠. 주위에 유기물은 아주 많았으니 거름을 만드는 일은 정성과 노동력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거름으로 사용했습니다.
똥, 오줌, 재, 풀, 깻묵, 볏짚, 썩은 흙, 생선 찌꺼기, 동물 뼈, 나뭇가지, 쌀겨, 삶은 곡식, 바다풀까지.
요즘은 대부분 버려지는 것들이지만 옛날에는 아주 귀한 대접을 받은 재료들입니다.
「한 사발의 밥은 남에게 주어도 한 삼태기의 재는 주지 않는다」 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람의 똥이나 오줌도 '거름' 이라고 부르며 귀하게 여겼습니다.
똥은 어느 정도 썩혀서 사용했습니다.
흔히 밭가에 웅덩이를 파고 모아 두고 한참을 기다렸다가 검은색으로 변한 뒤에 썼습니다.
1950년대까지 서울 근교의 농민들은 시내에 들어와 돈을 내고 똥과 오줌을 퍼갔다고 하죠.
오줌도 똥에 못지 않은 거름이었습니다. 농가에서는 사랑방 가까이나 뒷간 근처에 오줌독을 묻고 따로 받았습니다.
농사에 열심인 사람은 남의 집에 있다가도 오줌을 누려고 자기집으로 달려가기도 했습니다.
농가에서는 뒷간을 크게 짓고 한쪽에 재를 모았습니다.
이곳을 잿간 이라고 불렀습니다. 뒷간은 곧 잿간이었죠.
화로에 담긴 재는 아침마다 잿간으로 들어갔고, 아궁이에 쌓여 있던 재도 삼태기에 담아서 잿간에다 부었습니다.
재 위에 불을 때면 묵은 재는 곧 없어지기 때문에, 끼니마다 먼저 아궁이의 재를 알뜰히 긁어낸 다음에 불을 지폈습니다.
뒷간은 똥과 오줌을 누는 곳이었지만 잿간은 농사를 위한 거름을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재는 요즘 말로 하면 알칼리성이 강해서 산성토양을 개량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거름입니다. 칼륨도 많아서 아주 좋은 거름이죠.
재는 바람에 흩날리기 때문에 오줌이나 똥에 버무려서 씁니다.
똥을 눈 다음 고무래로 재를 끌어다가 똥과 오줌에 버무려서 한쪽에 모아둡니다. 이것을 '똥재' 라고 불렀습니다.
똥재는 온돌의 역사와도 관계가 깊은 가장 한국적인 거름이었습니다.
똥오줌을 재와 섞으면 냄새도 없어지고 보기에 흉하지도 않았으며,
재가 똥오줌의 수분을 흡수하여 딱딱해졌기 때문에 저장과 운반이 편리했으며,
재의 강한 알칼리성으로 세균과 기생충을 죽일 수 있었고, 구더기나 벌레도 모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잘 만들어진 똥재는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는 없어서 못쓰는 귀한 것이었습니다.
성안에 사는 양반들은 처리하기 힘든 똥을 가지고 똥재를 만들어서 농민들에게 팔기도 했습니다.
1910년대에 경기도 수원에서는 똥재 상품(上品) 한 섬이 30전, 중품은 20전, 하품은 10전에 팔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요즘 생태화장실을 만들어서 사용하시는 분들은 왕겨를 주로 사용하십니다. 재가 귀하기 때문입니다.
똥과 재는 참 좋은 조합입니다.
흙도 거름으로 이용했습니다.
오래된 집의 벽을 털어낸 흙이나 구들미를 거름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구들미는 방구들을 뜯어 고칠 때 나오는 흙과 재를 말합니다.
구들미를 거름으로 쓰기 위해서 해마다 모를 낼 무렵에 구들을 뜯기도 했습니다.
도랑이나 개울, 저수지 바닥의 흙도 거름으로 이용했습니다.
흙과 물에 섞여있는 물풀은 부드럽고 분해도 빨라서 거름으로 쓰기에 아주 좋았습니다.
똥과 오줌을 바닷물에 섞어서 보름쯤 썩혔다가 뿌리기도 했고, 똥이 부족할 때는 바닷물만 썩혔다가 뿌리기도 했습니다.
개똥도 좋은 거름이었습니다.
개똥을 물에 타서 쓰기도 했고, 똥이나 오줌에 섞어서 쓰기도 했습니다.
삼태기 중에서 씨앗을 담는 것을 씨삼태 라고 불렀고, 개똥을 담는 것을 개똥삼태 라고 불렀습니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개똥삼태를 메고 길가에 널린 개똥을 호미로 긁어 담았습니다.
▶ 거름 중에서
씨를 뿌리기 전이나 모를 내기 전에 주는 것을 밑거름 이라고 불렀고
씨앗을 뿌린 뒤나 옮겨 심은 뒤에 주는 것을 웃거름 이라고 불렀습니다.
거름이 워낙 귀한 것이니 웃거름을 주기는 어려웠습니다만
극히 일부 부잣집에서는 웃거름으로 콩을 삶아서 논에 뿌려주기도 했습니다.
웃거름을 먹은 벼는 다른 집의 벼보다 더 크고 잘 자랐죠.
< 두엄 >
▶ 옛날에는 소나 말, 돼지를 키우는 집이 많았습니다.
특히 소는 논갈이나 밭갈이를 할 때 꼭 필요한 존재였죠.
외양간의 바닥은 흙이었고 항상 깻대나 짚을 잘라서 깔아뒀습니다. 부드러운 나뭇가지를 작두로 잘라서 깔기도 했습니다.
긴 시간동안 소나 말이 밟고, 똥과 오줌이 스며든 재료들은 훌륭한 거름이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거름을 두엄이라고 불렀습니다.
⊙ 두엄이란
가축의 배설물과 농업 부산물을 혼합, 퇴적해서 자연발효처리 된 거름을 말합니다.
조금씩 만들어진 두엄은 외양간 가까이에 두엄터를 만들어서 그곳에다 쌓았습니다.
두엄터를 뒤꼍이나 마당 앞의 그늘에 두기도 했습니다. 여름철에는 소나 말을 그런 곳에 매어 두기 때문이죠.
옛날에는 지붕 재료로 볏짚이나 새풀을 많이 썼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썩는 재료였죠.
비가 오면 썩은 초가 처마에서는 검붉은 물이 떨어졌습니다.
이 물은 지지랑물 이라고 불렀고, 지지랑물도 모아서 좋은 두엄을 만드는데 사용했습니다.
두엄더미에 오줌이나 지지랑물, 개숫물 등을 부어서 가끔씩 뒤집어주며 고루 썩게 만들었죠.
소 외양간에 깔았던 두엄은 '쇠두엄' 이었고, 돼지우리에서 나온 두엄은 '돼지두엄' 이었습니다.
농한기에는 들에 자라는 잡풀을 베어서 풀두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풀두엄은 푹 썩혔다가 이듬해 봄에 사용했습니다. 지붕을 걷어낸 '썩은새' 도 좋은 두엄 재료였습니다.
벼농사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논에 두엄을 내는 일이었습니다. 두엄을 내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정월 보름 안에 다섯짐 이상의 두엄을 내야 그 해 농사가 풍년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찍부터 서둘러 두엄을 내었습니다.
이 시기가 지나면 얼음이 녹아서 두엄내기가 불편했습니다.
쇠두엄, 돼지두엄, 썩은새, 재 등을 전부 넣고 갈아엎어서 썩혔습니다.
두엄을 넣은 논에도 봄철에 여린 풀을 베어 넣어야 벼가 잘 자랐습니다. 적어도 한 마지기에 생풀 다섯 짐 이상을 넣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논둑을 깨끗이 깎아서 넣었고, 산과 들의 풀을 베어서 넣었고, 자운영을 심어서 갈아엎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풀한다' 라고 했습니다. 풀은 귀한 거름이었습니다.
풀을 넣으면 땅이 부글부글 썩었고, 물까지 검게 변했습니다.
단백질이 귀한 시절 이었습니다.
사람도 고기를 먹기 힘든 시절이었고, 소는 풀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똥에도, 소의 똥에도 질소가 부족했습니다.
주위의 모든 것은 다 거름이 되었고, 얼마나 많은 거름을 준비하는가에 따라 생산량이 달라졌습니다.
< 퇴비와 비료 >
시간이 흐르고, 거대한 공장에서 거름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왔습니다.
앞 시간에 질소비료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공장에서 대규모로 거름을 만드는 기술이 보급됩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화학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거름에는 비료(肥料)라는 한자 이름이 붙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던 토박이말인 거름은 비료의 한 종류가 되었습니다. 자급비료(自給肥料) 라는 이름이 붙었죠.
비료는 농가에서 직접 만들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금비(金肥) 라고 불렀습니다. '돈을 주고 사야하는 비료' 라는 뜻입니다.
금비는 돈값을 했습니다. 질소비료의 힘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 화학비료를 금비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사용하던 거름은 퇴비(堆肥) 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 주로 볏짚이나 풀을 쌓아서 만든 거름을 퇴비(堆肥)라고 불렀고,
▷ 가축의 똥과 오줌을 스며들게 해서 만들어진 두엄은 구비(廐肥) 라고 부르며 퇴비와 구분하게 됩니다.
▷ 퇴비와 구비를 구분없이 같이 부를 때는 퇴구비(堆廐肥) 라는 말을 썼습니다.
▶ 이후 비료관리법이 만들어집니다.
거름은 비료가 되었고, 비료는 각자 만들어서 쓰는 것이 아닌 공장에서 상품으로 만들어서 판매하는 것이었으니
비료를 구입해서 사용하는 농민을 위해서라도 비료에 관한 법이 필요하게 된 것이죠.
아무나 대충 만들어서 팔면 안되니까요.
비료관리법이 만들어지면서 거름의 종류는 한층 더 복잡해지고, 그 의미도 복잡해집니다.
우리가 사용하던 거름은 이제 퇴비라는 이름을 쓰기도 어려워졌습니다.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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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와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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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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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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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소질비료, 인산질비료, 칼리질비료, 복합비료, 석회질비료, 규산질비료,
고토비료, 미량요소비료, 그 밖의 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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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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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토 1호, 상토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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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물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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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숙유기질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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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분퇴비, 퇴비, 부숙겨, 분뇨잔사, 부엽토, 건조축산폐기물, 가축분뇨발효액,
부숙왕겨, 부숙톱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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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질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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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박, 골분, 잠용유박, 대두박, 채종유박, 면실유박, 깻묵, 낙화생유박,
아주까리유박, 기타식물성유박, 미강유박, 혼합유박, 가공계분, 혼합유기질,
증제피혁분, 맥주오니, 유기복합, 혈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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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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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양미생물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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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료와 퇴구비 구분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원료가 되는 물질의 종류를 따지지 않고 전부 거름이나 두엄으로 불렀지만
판매용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원료를 가지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아야 하고 종류가 달라야 하죠.
옛날에는 화학비료만 비료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다 비료라는 이름을 가집니다.
그래서
같은 이름을 이야기 하면서도 서로 다른 뜻일수도 있습니다. 옛날과는 이름이 달라졌으니까요.
혼란을 피하려면 정확한 이름을 말하는게 필요하겠죠.
밭에 거름은 언제 주면 되나요? 퇴비는 언제 주나요? 비료는 언제 주나요?
질문글을 읽는 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알아듣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퇴비도 다 같은 퇴비가 아니고, 유박도 다 같은 유박이 아닙니다. 물론 화학비료도 마찬가지죠.
< 사람의 똥과 가축의 똥 >
⊙ 시대가 달라진만큼 똥도 달라졌습니다.
▶ 살을 찌울 걱정보다 살을 뺄 걱정을 많이 하는 시대죠. 똥에도 소화되지 못하고 남은 영양분이 넘쳐납니다.
옛날 사람들이 이런 똥을 거름으로 썼으면 수확량은 몇 배로 늘었겠죠.
원하지 않는 식물은 잡초고, 원하지 않는 소리는 소음입니다.
똥과 오줌이 거름으로 쓰이면 영양분이지만 변기로 들어가는 순간 오염물질입니다.
똥과 오줌의 영양분을 없애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깨끗한 물이 소모되고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똥과 오줌을 버리고 정화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와 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 되었고
똥과 오줌의 영양분을 흙으로 식물로 돌려주는 것은 비상식이 되었습니다.
돈 주고 비료를 사면 되는데 더럽게 똥과 오줌을 왜 거름으로 써요?
발달한 과학은 농업기술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비료가 되어서 돈을 요구합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비료는 깨끗한 것이 되었고, 거름과 두엄은 더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몸에 해로운 것은 기꺼이 감당하지만, 더러운 것은 거부하는게 상식이 되었습니다.
비료는 쉽게 구입할 수 있지만, 농업기술을 적어놓은 글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농부는 거름을 만드는 지혜를 잃었습니다.
⊙ 유럽인들은 사람의 똥을 끔찍하게 싫어합니다.
그래서 뒷간 문화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모든 집에 뒷간이 없었습니다.
똥과 오줌은 거리에서도 누고 정원에서도 누는 것이었죠.
농작물에 사람의 똥을 사용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니 사람의 똥을 모을 이유가 없습니다.
건물에는 뒷간이 없었고, 실내에서는 전부 의자 변기와 요강을 사용했습니다.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에도 뒷간은 없었습니다. 궁전의 정원은 똥오줌으로 뒤덮였죠.
사람들의 하루 일과는 길바닥에 요강의 내용물을 버리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거리는 똥 범벅이었고, 집 옆이나 공터에는 항상 똥이 가득했습니다.
귀족들은 악취를 감추기 위해서 향수를 사용했고
마른 땅과 똥오줌을 가려서 밟아야 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굽이 높은 신발은 필수였습니다.
2층에서 똥을 버리는 사람이 많으니
똥이 머리에 튀는 것을 막으려면 남녀 모두 모자를 써야했고 파라솔도 외출의 필수품이었죠.
하천과 지하수는 똥과 오줌으로 오염되기 시작합니다.
상수도와 하수도가 없던 시절이니 하천의 물과 지하수의 물은 곧 씻고 마시는 물이었습니다.
오염된 물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페스트, 콜레라, 장티푸스 같은 무서운 전염병이 유럽 전체를 휩쓸게 됩니다.
수많은 희생 끝에 큰 교훈을 얻은 유럽 사람들은 독특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개인 위생이 강조되고, 안그래도 더럽다고 멀리하던 똥오줌을 더욱 더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엄청나게 크고 넓은 하수도를 만들어서 똥과 오줌을 거주지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버리기 시작합니다.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업고 탈출하던 거대한 하수도는 똥과 오줌이 가득 차 있던 곳이었습니다.
가슴까지 차오르는 똥오줌을 헤치며 이동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음용수에서 똥오줌을 분리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 아니었고,
뒤늦게 동양의 방식처럼 똥오줌을 수거하여 근교의 농장에 거름으로 공급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었지만
중국이나 한국, 일본처럼 효율적이고 위생적으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나마 이런 방법도 암모니아 합성법이 발명되고 비료공장이 만들어지면서 사라지게 됩니다.
사람의 똥에 대한 유럽인들의 혐오는 결국 수세식 변기를 발명하기에 이릅니다.
영화 『마션』에서 주인공인 맷 데이먼은 화성에 홀로 남겨지고 식량이 없어서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동료들이 남기고 간 폐기물인 인분을 이용해서 감자 재배에 성공하고 결국 긴 시간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작가는 절박한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너무나도 더러운 인분'까지 식량재배에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것은 서양인들의 인식입니다. 서양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농사에 인분을 이용하는 것이 그냥 '그럴 수도 있는' 당연한 일이거든요.
⊙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의 똥을 농사에 이용했습니다.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로 사람의 똥을 농사에 이용했습니다.
똥은 귀한 거름이니 잘 모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뒷간이 있었고 잘 모아서 농사에 이용했습니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잘 없는 도성 안에도 뒷간이 집집마다 있었고, 궁궐에도 뒷간이 많았습니다.
그런곳의 똥은 인분을 전문으로 수거하는 업자들이 수거해서 주변의 밭에 팔아서 이익을 남겼습니다.
인분 외에도 개똥이나 말똥도 거래 대상이었습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는 공중화장실도 있었습니다.
사대부의 집에는 남녀 구분을 엄격히 할 정도로 뒷간이 잘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성 내에서는 농사가 금지되어 있어서 똥오줌 처리가 어려웠고
후기에 이르러 도성 내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우리의 하천도 오염되기 시작했습니다.
똥오줌의 관리가 허술해졌고 개천에 모인 똥오줌과 재는 하천의 바닥을 높이고 적은 양의 비에도 범람하게 만들었습니다.
큰물이 지면 궁궐의 하수구 역할을 했던 오간수문으로 개천물이 역류하기도 했죠.
잦은 범람은 한양 도처에 똥오줌의 흔적을 남겼고, 지금까지도 옛 도성 토양에서 기생충 알의 흔적이 발견됩니다.
근대에 이르러 유럽의 화장실 문화가 들어오고 우리의 개념도 급격히 바뀌긴 했지만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똥 개념과 유럽인들의 똥 개념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똥은 귀한 자원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가까운 곳에 모아야 했고, 모으고 거름으로 만들기 쉬운 뒷간 문화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똥을 거주지에서 최대한 멀리 버리기 위해 하수도 시설이 발달했고 물을 섞어 버리는 화장실이 생겼습니다.
사람의 똥을 처리하는 방식에 따라 영향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유럽에서는 똥을 주위에 그냥 방치하는 바람에 전염병의 원인이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충분히 발효되지 않은 똥을 쌈채소에 거름으로 주는 바람에 기생충이 번성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충분히 발효시키면 기생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옛날에는 기생충의 존재도 알기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학교에 채변봉투를 주기적으로 내야 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요즘 사람들의 몸에는 기생충이 거의 없습니다. 익히지 않은 민물고기를 먹을 때 종종 감염되기는 하지만요.
사람의 똥과 오줌은
도시 단위로 버리고 한꺼번에 모이면 자연으로 되돌리는데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오물이 되지만
조금씩 발효를 통해 흙으로 돌려주면 흙과 식물과 사람을 먹여살리는 귀중한 양분이 됩니다.
물론 도시에서는 불가능하고 텃밭이 있는 시골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 우리나라 옥수수 곡물자급률은 0.7% 입니다.
매년 1,000만톤 정도의 옥수수가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되고,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등의 국가에서도 수입됩니다.
옥수수를 그렇게 많이 먹냐구요?
소가 먹고, 돼지가 먹고, 닭이 먹습니다. 1,000만톤의 옥수수 중에서 800만톤 이상이 사료로 사용됩니다.
결국 미국산 옥수수는 가축을 통해서 우리가 먹게 됩니다.
미국 옥수수 농가의 상황에 따라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의 가격, 심지어 우유와 새우깡 가격까지 들썩이게 되죠.
한우는 우리나라 소지만, 대부분 미국산 옥수수 사료를 먹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사료만 먹으면 살이 안찌거든요. 그러니 마블링이라고 불리는 근내지방이 생기지 않습니다.
주로 곡물사료를 먹고 자라는 한우의 똥도 많은 부분이 미국산 옥수수로 만들어진 셈이죠.
덕분에 요즘 소 똥은 옛날 소 똥이 아닙니다. 돼지 똥도 그렇고 닭 똥도 그렇습니다.
질소, 인산, 칼륨 함량이 옛날에 비해 몇 배로 늘었습니다. 소가 풀보다 옥수수를 많이 먹어서 생기는 일입니다.
소 똥에 영양분이 많아지니 생각하지도 않은 피해가 생깁니다.
많이 쓰면 좋던 똥이, 많이 쓰면 해로운 똥으로 바뀌었습니다.
풀을 적게 먹는 소똥에는 섬유질이 없어지고 냄새가 많이 납니다.
옛날의 축사 냄새와 요즘의 축사 냄새는 다릅니다.
가축분퇴비는 가축의 똥에 탄질비를 맞추기 위해 톱밥 등의 재료를 섞은 것입니다.
소가 풀보다 옥수수를 많이 먹으니 소똥의 탄질비는 많이 낮아졌고 톱밥같은 탄소질 재료를 더 많이 넣어야 합니다.
소 똥, 돼지 똥, 닭 똥이 들어간 가축분퇴비는 화학비료와 비교를 할 만큼의 영양분을 가지게 됩니다.
거름에 영양분이 많아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한데, 사람들은 적당히 쓰는 것보다 많이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원래 퇴비는 풀을 쌓아서 만든 것이라서 많이 쓰면 흙의 물리적 성질 개량에 아주 좋은 거름이었죠.
그 옛날의 기억이 사람들의 습관 속에 남아있나 봅니다.
가축분퇴비는 흙의 물리적 성질 개량에 사용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거름이 되었습니다.
옛날의 소똥과 요즘의 소똥은 완전히 다른 똥이고
옛날에 만들어쓰던 퇴비, 구비와 요즘 판매되는 가축분퇴비는 완전히 다른 거름입니다.
< 다음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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