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농학(農學)

텃밭 토양 관리 - 20 (쿠바식 텃밭-틀밭)

by 음악감독 2024. 6. 6.

네이버 카페 '지성아빠의 나눔세상' 에서 제가 2021년부터 연재하던 글입니다. 

여기로 복사해서 옮겨옵니다. 

 

 

 

다수확 농사비법? 이런 것은 아닙니다.

농사짓는데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생각되지만

읽고나면 뭔가 도움이 된 듯한, 그런 이야기를 적어 보려고 합니다.

내용이 이어지는 연재글입니다.

이전 게시글 확인 안하신 분들은 먼저 읽고 이 글을 읽으시는게 도움됩니다.

▶ 아주 작은 섬을 제외하고

지구상 대부분의 육지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현생인류라고 부르는 호모 사피엔스 종이 나타난지도 수십만년 전이니

사람들은 그 기나긴 세월동안 곳곳으로 이동해서 대를 잇고, 진화하고 적응해 왔습니다.

사람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두려워하거나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유럽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그 정도가 좀 심했습니다.

다른 대륙에 살던 사람들을 사람이 아닌 존재로 취급했거든요.

1492년

콜럼버스는 긴 항해 끝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 합니다.

'사람' 이 없었기에 자신들의 땅이라고 선언해버립니다.

우리도 예전에 배웠던 역사적인 사건이죠.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운 나쁘게도 삶의 터전을 발견당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

그 후 150년동안 1억명 정도였던 사람들의 숫자가 300만명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대륙의 모든 문명과 사람들은 지워지고

유럽의 사람들과 문화와 언어가 그곳을 채우게 됩니다.

아메리카대륙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다 죽지 않고 지금까지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유럽인들의 아메리카대륙 발견이 아니라, 유럽인들의 아메리카대륙 침략이라고 배웠겠지요.

▶ 1492년 10월 27일

1차 항해중이던 콜럼버스는 현재의 쿠바 섬을 발견하고 왕자 후안의 이름을 따서 후안 섬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이후 스페인에서 총독이 파견되면서 쿠바는 공식적으로 스페인의 영토가 되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전부 노예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인들에게 살해당했고,

혹독한 농장 노동과 사금 채취, 유럽인들이 몰고 온 전염병 등으로 쿠바 섬의 수십만 원주민들은

1세기 정도만에 거의 다 죽게 됩니다. 일을 할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정복자들은 당황하지 않고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해서 부족한 노동력을 채웁니다.

쿠바가 어디 있는 나라인지 알고 계신가요?

미국 플로리다 반도의 바로 아래쪽

멕시코의 오른쪽에 있는 섬나라가 쿠바 입니다.

쿠바에 노예로 잡혀온 아프리카지역의 사람들은

북미지역에 잡혀온 사람들과는 다르게 부족별로 함께 살게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들 문화 중 일부가 살아남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 쿠바 문화의 한 부분을 담당합니다.

▶ 스페인의 이런 세력 확장을 보고 다른 나라들이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쿠바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 대서양과 멕시코만에 접한 바다를 '카리브해' 라고 부릅니다.

카리브해 인근에서 유럽 국가들끼리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집니다.

1655년에는 영국이 쿠바 바로 아래쪽 자메이카를 식민지로 만들었고,

1697년에는 프랑스가 쿠바 바로 옆 아이티를 식민지로 만듭니다.

전쟁은 더욱 치열해져서 그 후 영국군대가 쿠바를 침략해서 아바나를 포위하고 11개월동안 점령하기도 합니다.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스페인 노예사냥꾼들에게 잡혀서 쿠바로 팔려온 아프리카 사람들의 숫자는 100만명에 이릅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모든 것은 유럽인들에게 넘어갔고,

대략 1,200 만명 정도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세계 각국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이렇게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19세기까지 쿠바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설탕을 생산하는 곳이었습니다.

막대한 이윤은 소수의 스페인계 후손인 지주들에게 흘러들어갑니다.

쿠바에서 억압받던 흑인들이 수차례 반란을 일으켰지만 스페인의 가혹한 탄압으로 전부 실패하고 맙니다.

그 사이에 쿠바의 위쪽에 살던 사람들,

영국에서 건너온 사람들과 이민자들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들었고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멕시코와 전쟁을 치르며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아래에 있는 쿠바를 그냥 둘 이유는 없었죠.

쿠바를 병합하기위한 정치공작은 수십년간 진행되었고

결국 쿠바에 대한 소유권을 두고 스페인과 미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집니다.

미국 대통령과 의회는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했고

4개월간의 전쟁 끝에 미국은 스페인을 이기고 쿠바에 대한 소유권을 장악합니다.

1898년, 파리에서 조약이 체결되고

전쟁에서 진 스페인은 쿠바와 함께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괌을 미국에 넘겨줍니다.

400년 가까이 스페인의 식민지로 있던 쿠바는 새로운 강대국에게 넘어갑니다.

▶ 대외적, 형식적으로 미국은 쿠바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켰고, 쿠바에는 공화국이 만들어졌지만

미국 군대의 군정이 실시되었고,

새로 만들어진 쿠바 헌법에는

미국이 쿠바를 간섭하고, 재정과 외교를 감독하고,

쿠바 남동부의 도시 관타나모를 점령하고 해군기지를 만들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관타나모는 2022년 현재까지 미군이 점령중이고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사람들을 감금하는 비밀 수용소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미군의 군정이 끝나고 쿠바에는 대통령이 선출되고 의회가 생겼습니다만

미국은 정보기관을 이용하여 계속적으로 쿠바의 정치에 개입하게 되고

대부분의 쿠바 농장과 사탕산업, 교통수단 등 사회기반시설은 미국 자본이 장악하게 됩니다.

막대한 부가 미국으로 넘어갔고 쿠바의 정치 경제는 점점 엉망이 되어갔습니다.

쿠바를 포함한 남미대륙 전체에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혁명의 기운이 피어오릅니다.

▶ 1953년부터 1959년 사이

피델 카스트로체 게바라 등의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무장 투쟁을 조직하여

친미 정권을 전복하고 정권을 장악합니다.

수십만명의 지배층 사람들은 미국으로 피신했고, 그들의 자본과 토지는 국유화됩니다.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고 미국과 쿠바는 국교를 단절했습니다.

▲ 쿠바 혁명 직후의 피델 카스트로(제일 왼쪽), 체 게바라(왼쪽에서 세번째)

재미없는 내용인가요?

쿠바식텃밭-틀밭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쿠바에서 왜 틀밭을 만들기 시작했는지, 그 의미와 효과는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려면

그 역사적인 배경을 알아야 하기에 좀 길게 적고 있습니다.

쿠바와 미국과의 적대적인 관계는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이거든요.

< 노스우즈 작전 >

쿠바혁명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완전히 차단되자 미국은 답답했습니다.

경제적 이익이 줄어든 것도 아쉬웠지만

소련과의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본국의 바로밑에 적대적인 국가를 둔다는 것은 정말 불안한 일이었거든요.

군인 출신이었던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임기가 끝나갈 무렵,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시기였습니다.

미국 군부와 중앙정보국(CIA) 는 쿠바 혁명정부를 뒤집고 혁명 이전상태로 돌리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쿠바를 무력으로 침공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런 명분없이 전쟁을 시작하다가는 세계적인 비난을 받을 것은 뻔한 일이고

자칫하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위험이 있었거든요.

2차 세계대전 참전의 명분이 되었던 일본의 진주만 공습. 그런 종류의 계기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미국의 합동참모본부(JCS)에 의해 만들어진 이 작전 계획은 다음과 같은 실행 계획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 여객기가 쿠바에 의해 격추된 것처럼 위장하는 방법
  • 비행기를 납치해서 미국의 주요 지점에 자살 테러를 가하는 방법
  • 마이애미 등의 시가지에서 쿠바인으로 위장한 사람이 총기난사를 하게 하는 방법

자작극 테러를 벌여서 피델 카스트로에게 뒤집어씌우고 쿠바에 대한 침공을 정당화하려는 이 계획은

당시 합참의장 리먼 렘니처가 계획안에 서명하여 국방부에 제출했지만

이제 막 대통령으로 당선된 케네디 행정부에 의해 거부당했습니다.

실제로 계획되었고 실행될뻔한 이 계획은 뒤에 일어난 9.11 테러와 관련된 음모론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됩니다.

< 피그만 침공 >

'실미도' 라는 영화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비슷한 부대가 미국에도 존재했습니다. 우리나라와의 차이점은 작전을 정말 실행했다는 점이죠.

실미도에서 훈련받은 비밀 부대는 끝내 북한에 침투하지 못했지만,

미국에서 만든 이 부대는 실제로 작전을 시행하게 됩니다.

아이젠하워 정권 말기인 1960년, 미국 군부와 CIA 는 쿠바정부 전복작전을 계획합니다.

마이애미에 거주하는 약 1,500 여명의 쿠바 망명자 출신 지원자를 모아 부대를 만들고 '2506여단' 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쿠바인에 의한 작전이어야 했습니다. 미국이 개입했다는 것을 세계가 알면 큰일이었으니까요.

이들은 과테말라의 비밀 기지에서 훈련을 시작합니다. 목적은 쿠바 정권 붕괴를 위한 상륙작전 이었습니다.

과테말라에는 CIA 의 지원하에 쿠데타로 만들어진 군사정권이 들어서 있었기에 이런 훈련이 가능했습니다.

아이젠하워에서 케네디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1,500 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군사훈련을 진행했고, CIA 와 국무부까지 개입된 이런 큰 프로젝트를

새로 당선된 케네디 대통령은 그냥 취소할 수 없었습니다.

병사들이 쿠바에 상륙하면 쿠바 내부에서 큰 호응이 있을것이라는 CIA 의 말을 믿고 케네디는 이 작전을 실행에 옮깁니다.

노스우즈 작전은 취소시켰지만 이 작전은 취소할 수 없었습니다.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죠.

미국에 의해 실행되었지만 미국이라는 국적을 지우고 미군 개입의 증거를 지워야 했던 어정쩡한 상륙작전.

상륙작전 초기에는 병력의 열세로 인해 쿠바군은 큰 피해를 입게 되지만

카스트로와 쿠바정부는 전면전을 선포하고 해안을 봉쇄합니다.

이후 국민들에게까지 총 동원령을 선포하고 만일을 대비해서 반정부 성향의 사람들 10만여명을 즉시 체포하고 구금합니다.

소련의 정보기관에 의해 사전에 정보가 새어나갔던 것이죠.

CIA 가 장담했던 쿠바 내부에서의 호응은 모든 사람들이 체포되면서 물거품이 됩니다.

정체가 들킬 위험 때문에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상륙작전.

결국 2506여단은 쿠바군에게 사살되거나 생포되면서 참패했고,

미국은 1,000여명의 포로를 석방시키는데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미국의 군사 작전 역사상 가장 참혹하게 끝난 작전이었고, 첩보 및 공작 역사상 가장 처참한 실패로 남은 피그만 침공작전.

집권 초기에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입은 케네디 대통령은 CIA 와 정보부처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드러냅니다.

CIA 에 대한 케네디 대통령의 분노는 무척 컸습니다.

"CIA를 1천개의 조각으로 찢어 허공으로 날려버리겠다!"

CIA 국장은 파면되었고, 케네디는 CIA 자체를 해체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얼마 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물거품이 됩니다.

이런 상황은 케네디 암살에 CIA 가 개입했다는 음모론에 힘을 실어주며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쿠바의 반미감정은 극에 달했고

카스트로는 계속적인 미국의 압박과 군사작전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소련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피그만 침공 사건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세계적인 위기로 이어집니다.

< 쿠바 미사일 위기 >

소련의 확장과 독일의 재건을 우려한 국가들이 북대서양 조약기구, 즉, 나토를 창설하고

1949년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만이 가지고 있던 핵 독점이 무너집니다.

이에 미국은 나토에 가입하며 동맹에 합류합니다.

1957년 소련이 세계최초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할 수 있다는 위협이 현실화되자

미국은 소련의 위협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차원에서 이탈리아와 터키에 주피터 미사일을 배치합니다.

모스크바의 코앞에 설치된 미국의 미사일기지.

미국 미사일의 사거리 안에 수도 모스크바가 들어가게 되면서, 서로 핵무기를 사용하면 전쟁에서 진다는 것을 소련은 깨닫게 됩니다.

이에 소련은 미국과 가까운 곳에 미사일 기지를 배치할 방법을 찾게 되고

때마침 쿠바 혁명정부의 요청은 소련의 이해와 맞아떨어집니다.

"40기의 미사일이 24시간 내내 플로리다를 겨누고 있으면,

펜타곤에 있는 어떤 장군도 두 번 다시 소련을 상대로 선제 핵공격을 하거나 쿠바를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하겠지."

미국이 먼저 모스크바와 가까운 이탈리아와 터키에 미사일 기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발각되더라도 국제적인 여론은 자신들 편일것이라고 소련은 판단합니다.

소련은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는 작업을 극비리에 진행합니다.

하지만 U-2 기에 찍힌 첩보사진에 쿠바에 건설중인 미사일 기지가 드러나면서 미국에서는 비상이 걸렸고,

양국 관계는 극한 대립으로 치닫게 됩니다. 소련의 핵무기가 미국 코앞에 배치된 상황이었으니까요.

▲ 정찰기에 찍힌 쿠바의 미사일 기지

전면적인 선제 핵공격으로 소련과 쿠바를 초토화 하자는 주장이 미국 군부에서 강력하게 제기되면서

핵전쟁, 3차 세계대전의 공포가 점점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케네디는 전군에 비상을 걸고 항공모함 8척과, 90여척의 함대를 동원해서 쿠바 주위를 완전 봉쇄했고

진입하려는 배에 대해 압수수색을 명령합니다. 수색을 거부하면 격침시키라는 명령도 내립니다.

소련의 흐루쇼프는 핵잠수함 6척의 호위하에 미사일 부품과 기술자를 태운 선박을 쿠바로 진입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미국과 소련의 핵미사일들은 전부 발사 준비 상태에 들어갔고, 전략폭격기에는 핵폭탄이 탑재됩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와 나토에도 비상이 걸립니다.

서로간에 핫라인이 없던 시절, 사소한 오해 하나가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도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이런 상황을 종종 보셨을 겁니다.

상부에서는 핵미사일 발사 명령이 떨어지고 잠수함 함장은 버튼에 손을 대고 고민하는 모습.

핵공격을 받으면 즉시 보복 공격을 해야하는데

상대방이 핵미사일을 정말 발사했는지 확인하려면 피해지역에서 보고가 들어와야 알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회의를 끝내고 백악관을 나오면서 노을이 드리운 가을 하늘을 보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다음주 토요일이 오기 전에 다 죽을 것이라는 예감에 공포에 휩싸였다."

로버트 맥나마라 - 미합중국 국방장관 (1962년)

이 큰 위기는 양국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겨우 해결되고 합의에 이릅니다.

소련은 쿠바에 있는 모든 미사일을 철수하기로 했고

미국은 터키와 다른 중동국가에 있는 미사일기지를 철수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케네디는 앞으로 쿠바를 침략하지 않겠다는데 동의합니다.

터키는 미사일 철수를 반대하며 미국에 항의했지만 3차 세계대전과 인류의 존망이 달린 문제라서 그냥 무시당합니다.

쿠바도 미사일 철수를 반대하며 소련에 항의했지만 무시당합니다. 대신에 냉전기간 내내 경제지원을 받게 됩니다.

서로 양보를 이끌어낸 상황이었지만 이후 반응은 무척 달랐습니다.

노련한 장군 출신인 아이젠하워 이후 풋내기 젊은 대통령이었던 케네디는 소련에 당당하게 맞서며 큰 인기를 얻었지만

소련의 흐루쇼프는 미국의 기세에 밀려 쿠바 미사일기지를 철수했다는 비난을 받았고 이후 브레즈네프에게 권력을 넘겨줍니다.

중국의 마오쩌뚱은 이후로 소련을 비웃으며 사회주의 세력의 주도권을 위해 본격적으로 소련과 충돌하기 시작했고

마찬가지로 김일성도 소련의 행동에 실망하고 중소분쟁 초기에 중국을 지지하는 행보를 보이게 됩니다.

< 미국의 금수조치 >

▶ 금수조치란 한 국가가 다른 특정 국가에 대해 금융거래, 투자, 교역 등의 통상을 금지하는 조치를 말합니다.

정치적 목적으로 특정국을 고립시킬 필요가 있을 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쿠바를 향한 군사작전이 더 이상 어려워진 미국은 다른 방법으로 쿠바를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미국이나 미국기업은 물론 미국에서 활동하는 외국기업도 쿠바와의 수출입과 금융거래 제한을 받게 되고

미국의 동맹국들도 쿠바와 거래를 할 때 눈치를 봐야 할만큼 금수조치는 강하게 진행됩니다.

이 금수조치는 역사상 가장 오래 진행되고 있는 금수조치 입니다. 아직까지 진행중이거든요.

작년(2021년)에 아반떼, 산타페, 모닝 등의 차량 800여대를 쿠바에서 관광산업 목적으로 구입한 적이 있는데

운반을 담당했던 현대글로비스가 금수조치 위반 혐의로 미국 국토안보부의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쿠바와 소련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집니다.

소련이 없으면 쿠바는 수출입이 막혀서 굶어죽을 지경이었기 때문에 소련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높여야 했고

소련은 미국의 코앞에 있는, 아메리카대륙 유일의 사회주의 국가를 반드시 지켜야 했거든요.

소련은 쿠바에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합니다.

소련은 쿠바산 사탕수수를 시장보다 높은 가격에 사 주었고, 시장보다 낮은 가격으로 쿠바에 석유를 공급합니다.

쿠바는 녹색혁명을 따라갑니다.

(전통적 농법과 달리 품종개량, 화학비료, 살충제와 제초제 등의 과학기술을 농업에 적극 활용함으로써

이루어진 식량생산량의 획기적 증가를 녹색혁명이라고 합니다.)

농업생산의 대부분을 사탕수수, 담배 등 단일작물로 집중하고 그 규모도 점점 넓혀나갑니다.

대규모 농장 운영을 위한 농기계와 그 기계를 굴릴 석유는 소련에서 싸게 공급받습니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화학비료를 대량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또한 소련에서 싸게 공급받습니다.

< 소련의 붕괴 >

1991년

소련은 붕괴되고 연방을 이루고 있던 국가들은 독립하기 시작합니다.

소련이 쿠바에 제공했던 특권들은 전부 사라지고 오직 미국의 금수조치만 남게 됩니다.

소련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들로부터 연료의 98%, 원자재의 86%, 식량의 98% 를 수입하던 쿠바는

대외수입의존도가 무척 높은 국가였습니다.

화학비료, 사료, 곡물, 농약, 석유 등을 대부분 수입해서 사용하던 쿠바는 소련의 붕괴 이후 치명적인 피해를 입습니다.

농작물에 줄 비료가 없어졌고, 농기계도 보급이 끊기고, 그나마 있던 농기계도 기름이 없어서 멈춰섰습니다.

병충해에 사용하던 농약도 더 이상 쓸 수 없었고, 가축들은 먹을 사료가 없어졌습니다.

거리에는 자동차들이 멈춰섰고, 기초 생필품들과 식량부족으로 국가 기능이 마비될 지경이었습니다.

이에 미국은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를 추가합니다.

'헬름스-버튼 법' 을 만들어서 쿠바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강화합니다. 미국의 국내법으로 국제무역을 규제하려고 시도합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 쿠바 정부에 의해 재산이 몰수당한 미국인들(쿠바혁명 때 재산을 빼앗기고 미국으로 망명한 사람들)은

쿠바에 투자한 외국인을 상대로 미국 법정에 제소할 수 있다.

- 쿠바와 거래하는 외국기업의 경영진 주주 가족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한다.

▶ 해결방법을 찾기 어려운 극심한 경제위기 속에서 쿠바가 찾은 해법은 도시농업이었습니다.

극심한 식량위기에 직면한 쿠바는 식량생산을 위해 도시를 경작하기 시작합니다.

도시 유휴지, 공터, 가정 안뜰 등 가용할 수 있는 토지는 전부 농지로 개간되었습니다.

식량이 없어서 전부 굶어죽을 상황이니 조그마한 공간이라도 전부 밭으로 만듭니다.

건물의 옥상에도 전부 밭을 만들고 농작물을 심습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기에 어쩔수 없이 유기농법으로 농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쿠바 도시농업의 시작이 됩니다.

쿠바는 사탕수수를 위주로 한 대량생산 시스템을 포기하고 소와 유기질 비료를 이용한

협동농장 중심의 친환경 농업으로 전환합니다.

< 쿠바의 농업 >

유기농은 생태계 보전에 도움이 되는 방법이지만 생산성이 떨어진다.

관행농은 최대한의 수확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지만 생태계를 오염시킨다.

쿠바의 유기농업을 지금까지 사람들이 연구하고 따라하려는 이유는

도저히 불가능할것 같았던 생태계 보전과 생산성 향상, 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기 때문입니다.

생태보전형 유기농업을 하면서도 생산성을 극대화시키고 국가 전체의 식량안보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시켰거든요.

▶ 1959년까지 쿠바 농산물 수출액의 75%는 사탕수수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작 가능한 농경지의 대부분이 외국인, 특히 미국인 소유였습니다.

농업생산이익은 대부분 미국으로 빠져나갔고,

단일품목 사탕수수만 생산, 수출되는 비정상적인 농업 경제 구조로 인해 대부분의 농가들은 빈곤한 상태였습니다.

▶ 사회주의 혁명 이후 쿠바 정부는

경작지의 70% 이상을 국가 또는 주(state)에서 관리하도록 하고, 임대 소작농에게 토지 소유권을 줍니다.

미국이 쿠바산 설탕 수입을 금지하자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에게 설탕을 수출하며 수출시장의 다변화를 도모합니다.

그리고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세계적 농업 트렌드인 관행농업체계를 채택하고,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하고,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량을 증가시키고, 농업의 기계화 및 산업화를 이룹니다.

이후 30년 동안은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지만

점차적으로 토양생산성의 쇠퇴, 환경오염, 소득감소, 식품의 안정성 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게 됩니다.

결정적으로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 미국의 경제봉쇄를 겪으면서 쿠바 정부는

관행농업체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농업정책을 시행합니다.

▷ 국영기업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농업생산 조직 개발

▷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경작지 분배

▷ 특정 농산물 생산 감소

▷ 생물농약과 생물비료 생산

▷ 농업의 기계화에서 벗어나 동물 활용

▷ 가족 또는 공동체 단위의 도시농업 장려

▷ 공급과 수요의 법칙 아래 농산물 시장 형성

▶ 석유가 사라지면 자동차가 멈춥니다.

신선함을 유지해야 하는 채소는 도시간 운송이 불가능해집니다.

과일이나 육류의 운송도 불가능해지고 저장도 힘들어집니다. 냉장 보관하려면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식품 수입 자체가 끊겼을 뿐 아니라, 운송과 저장도 불가능해지면서

쿠바 국민들은 하루 권장 칼로리의 1/3 정도밖에 섭취하지 못할 정도로 굶주림에 시달립니다.

신선식품의 저장과 운송에 필요한 연료 사용을 줄이고, 자급자족을 통해 신선식품 섭취를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가족 또는 공동체 단위끼리

집 앞마당 또는 공터 등에서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기계가 아닌 인력을 사용하여

채소, 과일, 식용농작물을 재배하도록 권장합니다. 그리고, 농사를 지을 땅을 나눠줍니다.

이것이

쿠바 도시농업(urban agriculture)의 시작이었고, 지속가능한 농업체계로 변모하기 위한 대안이었습니다.

▶ 쿠바 도시농업의 세부적인 계획과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쿠바 전역으로 생산물 균일 분배

② 지역생산 지역소비 원칙

③ 생산량 증가를 위한 시너지 효과를 위해 곡물-동물 통합

④ 토양 비옥도 향상을 위해 유기 물질 활용

⑤ 생물농약 사용

⑥ 곡물과 축산물의 수입의존도를 낮추기 위하여 가능한 더욱 많은 경작지 활용

⑦ 적극적인 과학과 기술의 활용과 응용

⑧ 1인당 하루 채소 권장량 (300g)은 섭취할 수 있도록 고품질의 신선농산물 공급

⑨ 잠재적 노동인력, 쓰레기 및 식물 영양소와 동물 사료를 위한 부산물 재활용 등을 활용해 농산물 생산 극대화

▶ 쿠바의 도시농업은 아바나(havana)에서 시작됩니다.

아바나는 쿠바의 수도입니다.

정부는 도시농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아바나에

퇴비 생산 지역, 자연친화적 농약연구소, 도시형 동물병원을 설립하였고

유기농법에 대해 아바나 주민들을 교육하고 지원하는데 중점을 둡니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농업과 관련된, 경제적 및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협회와 단체를 만들었고

국립소농협회를 설립하여 농업인 개개인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런 정부의 노력과 함께 아바나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도시농업에 참여했고

집 발코니 가든에서부터 집 또는 건물 옥상, 그린벨트로 묶인 지역에서까지 농사를 지었습니다.

< 쿠바 도시농업의 형태 >

쿠바의 도시농업은 다양한 형태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주요 도시농업시스템에는 오가노포니코, 집약텃밭, 자급용 농장 및 파티오 등이 있습니다.

1. 오가노포니코 (Organoponico)

도시에 잘 만들어진 밭이 조성되어 있는 경우는 드물죠. 흙도 부족합니다.

▶ 오가노포니코

경작에 적합한 비옥한 토지가 없을 때 집약적 형태의 유기농업을 실행하는 방법입니다.

콘크리트로 둘레를 만들거나 벽돌이나 합판 등을 쌓아서 만든 틀 안에

퇴비와 구비를 섞은 유기물을 채워서 채소를 경작하는 도시농업 형태를 말하죠.

공터, 도로외곽, 언덕같은 곳에서는 농사를 짓기 어려웠지만

이런 형식으로 만들면 어느 곳이든 농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틀 안에는 다양한 유기물을 채울 수 있는데,

커피나 사탕수수 수확 후 부산물이나 가축 퇴비 등이 주로 활용됩니다.

초기에는 경험부족과 재료부족으로 수익성이 높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고정식 관개시스템, 윤작이나 혼작 등의 재배기술 적용을 통해

연간 1m2 당 20kg 이상의 채소가 수확됩니다.

2013년 기준 아바나에는 생산성이 높은 97개의 오가노포니코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주로 양배추, 무, 고추, 토마토 등이 경작됩니다.

2. 집약텃밭 (Huerto intensivo)

집약텃밭은

오가노포니코와 경작지역, 재배방법과 유기농법 목적은 비슷하지만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인위적인 틀 안에서 재배를 하는 오가노포니코와는 다르게

식물을 토양에 바로 심어 지속적으로 양분을 흡수하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집약텃밭농업은 일반적으로 오가노포니코보다 경지면적이 넓고

비옥한 토양의 천연비료를 사용하기에 단위면적당 생산성이 높고 생산품의 질도 좋은 도시농업 입니다.

오가노포니코와 집약텃밭에서 도시농업으로

연간 10만톤 이상의 채소와 허브가 생산되고, 생산된 농산물은 자급과 판매목적으로 사용됩니다.

사진을 보시면 사각 틀의 시작과 끝 지점에 메리골드를 심어 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해충과 관련된 이전 게시글을 읽으신 분들은 어떤 의미인지 짐작하실 수 있을겁니다.

3. 기타 도시농업 형태

쿠바 도시농업의 다양한 형태로

파티오(Patio) 라고 불리는 안뜰과 소규모 텃밭, 자급 농장 등이 있습니다.

파티오와 소규모 텃밭은 800m2 이하의 면적에 채소를 재배하는 농업형태로 가정 내 소비가 주요 목적이며

가족단위로 채소, 향신료, 과일 재배와 가축 사육이 이루어집니다.

자급농장에서는 직원식당과 학교급식용 농산물이 생산됩니다.

이후 생산량이 늘어나자 농민들은 직판장에서 잉여농산물을 판매하였고

판매가격은 농민시장보다 낮은 가격으로 책정됩니다.

< 도시농업의 효과 >

1. 식량생산성 향상

소련의 붕괴 직후 쿠바는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해 지역 국가들 중에서 1인당 GDP가 가장 낮은 국가였지만

도시농업 시행 이후 다른 국가들보다 1인당 GDP증가율이 두 배 이상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극히 적은 화학비료 사용량으로 식량주권회복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게 됩니다.

▶ 1980년~1997년 식량수입 의존도

2. 고용창출

농지에 대한 사용권은 개인이나 협동조합 단위의 법인에게 양도됩니다.

농업과 관련된 준비, 교육, 실행, 유통, 판매 등은

국가적인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전문가가 양성되고 투입됩니다.

▶ 쿠바 도시농업의 세부 프로그램

 

3. 관개 인프라 건설

도시농업으로 인해 새로운 관개시스템의 개발도 가능했습니다.

오가노포니코와 집약텃밭에 고정식 또는 반고정식 관개시스템을 도입하고 시행하고 있습니다.

도시농업은 물 사용을 최소화하고 경작이 필요한 지역에 정확하게 공급하는

점적관개시스템 또는 살수관개시스템과 같은 물 절약형 관개시스템 사용을 촉진합니다.

4. 식이요법 의학

쿠바의 인구대비 의사 숫자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덕분에 의학 수준도 높은 편입니다.

의학교육과 병원진료는 모두 무료로 진행됩니다. 동네마다 병원이 있습니다.

의사들 숫자가 많기 때문에 외국에 의료지원을 보내는 일도 많습니다.

얼마전 코로나가 급속히 확산했을 때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 100여명의 의사들을 파견해서

이탈리아 정부가 큰 고마움을 표시한 일이 있었죠.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400여명이 활동중입니다.

가난한 나라 쿠바에서 외국으로 파견된 의사들이 송금하는 외화는 쿠바 경제에 큰 보탬이 되죠.

남미 지역에도 수백명의 의사들이 파견되어 활동중입니다.

물론 쿠바와 사이가 안좋은 미국은 '인신매매' 라고 부르며 강하게 비난중입니다.

쿠바의 의사들이 외화를 벌어들이면 미국의 경제제재가 힘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소련 붕괴이후 미국의 금수조치로 현대의약품 수입까지 어려움을 겪게 되자

쿠바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허브가 대체재로 연구되기 시작합니다.

쿠바의 씨엔푸에고 주 외과병원에서는 오랜 기간의 연구를 통해

비타민, 미네랄, 칼로리를 영양학적으로 충분히 공급하여 병 치료에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10여 종류의 채소즙을 소개한 적도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도시농업은 약초와 향신료 발전에도 크게 기여해서

오늘날 약초와 향신료는 병원에서 의학적 치료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무료진료소가 있는 약국에서 거담제부터 살균제까지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약초와 허브는 전량 도시농업을 통해 재배됩니다.

오늘날 쿠바에서는 대체의학에 관한 연구와 실제 진료가 가장 수준높게 진행되고 있고

전 세계 수많은 의사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 쿠바에 유학중이고, 대체의학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도 몰리고 있습니다.

5. 생물다양성

토종 종자를 되살리고 보존하고 보급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씨드림 같은 단체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토종 종자를 위해서 노력중입니다.

여기 카페에도 많이 계실겁니다.

녹색혁명이 진행되면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동식물의 유전자원이 급속히 줄어듭니다.

종자의 지적재산권은 농부의 손에서 기업으로 넘어가고

기업으로 넘어간 지적재산권은 더 큰 기업 혹은 외국의 기업으로 팔리기도 합니다.

앞서 해충 관련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생물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쿠바에서는 도시농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희귀작물이 부활하였고, 이전에 기르던 재래품종도 다시 재배하게 됩니다.

종자는 그 식물을 계속 재배해야 안전하게 보존됩니다.

종자 보존은 국가의 유전자원 확보에도 기여하며, 지역에 적합한 품종을 증가시켜

생태계 안정화에도 도움이 됩니다.

오가노포니코와 집약텃밭에서는 일 년에 최소 10여 종의 다른 농작물이 재배됩니다.

과일품종도 특정지역에서만 서식하는 종을 포함한 150여 개 이상의 개발, 확대, 보호되고 있습니다.

강황이나 참마도 다시 보급되기 시작했고,

재배기간이 짧은 고구마는 집약텃밭에서 윤작을 위해 많이 재배되고 있습니다.

도시농업을 통해 재배되는 500여 종 이상의 식물들은

쿠바의 전 지역에 위치한 농업 컨설팅 샾에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쿠바의 도시농업 진행 상황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6. 농업 전문인력 양성

쿠바에서는 도시농업을 지원하기 위해 생산자를 중심으로 지도교육과 훈련이 이루어졌고

농업생태기술에 능숙한 생산자들이 대량으로 배출됩니다.

쿠바의 농경지 대부분은 농업기술과 농법지식이 뛰어난 개인과 협동조합원 농민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또한

농업과 관련된 평균 이상의 기술을 보유한 14만명 이상의 유능한 기술자와 근로자가 현장에서 활동중입니다.

쿠바의 전 지역에 위치한 농업 컨설팅 샾에서는

생산자가 생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종자, 묘목, 유기비료, 농기구 판매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유기농법을 이용한 식물방역 등 다양한 기술적인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 쿠바식 텃밭 - 틀밭 >

"지금부터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농사기술을 발굴하라.

그것을 최신 과학기술과 접목시켜 농민들과 실험해 보고 농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아라."

생태보전형 농업은 일반적으로 생산성이 낮다고 알려져 있고,

생산성 향상이 높은 농업은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은 세계적인 상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쿠바의 농업은 그런 인식이 오류였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일반농업의 30%가 넘는 생산성을 보입니다.

쿠바에서 시작된 새로운 유기농 바람은 전 세계를 휩쓸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쿠바의 유기농을 배우고 따라하려는 노력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쿠바식 텃밭 - 틀밭의 형태도 들어오게 됩니다.

틀밭은 넓은 농장에서 하긴 어렵고 집 마당에서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

예쁜 모습의 마당을 가꾸기 위해 틀밭의 형태만 가져오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트랙터나 경운기도 쓸 수 없는 상황, 흔한 화학비료 한 포대도 구할 수 없는 상황, 살충제 한 병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쿠바식 텃밭 - 틀밭을 만들었습니다.

시작은 비참했지만 지금은 눈부신 성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쿠바의 유기농을 배우려 하지만 쉽게 따라하기는 어렵습니다.

쿠바에서 유기농은 선택이 아니라 어쩔수 없이 해야하는 것이었고,

개인, 가족, 가족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 등에 무상으로 혹은 적은 비용으로 농사지을 토지를 나눠줬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과학자들, 연구자들이 만들어내는 유기농 기술이

교육과 토론이라는 형태로 동네마다 농민들과 섞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생태적 균형점(ecological equilibrium)을 성취했기 때문에 해충은 천적에 의해 거의 통제됩니다.

살충물질을 살포할 필요가 거의 없습니다."

물론 살충제를 구하려고 해도 구할수가 없습니다.

아바나에서는 화학살충제 사용이 금지됩니다.

대신 천적유인식물, 해충기피식물, 천연살충제는 권장됩니다.

▲ 지렁이를 키우고 퇴비에 섞을 분변토를 만드는 곳입니다. 쿠바 농업의 큰 부분을 지렁이가 담당합니다.

< 틀밭을 만들어서 농사를 지으면 >

▶ 고랑과 이랑을 매번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요.

흙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한 번 만들어놓은 고랑과 이랑의 형태는 계속 유지됩니다.

이전 게시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단단한 땅은 사람의 발과 기계의 바퀴로 인한 답압, 그리고 제초제와 살균제가 만듭니다.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땅, 미생물이 식물 뿌리와 공생하고 있는 땅은 단단해지지 않습니다.

▶ 영양물질이 가득한 흙의 표층, 그리고 거름같은 유기물이 쓸려 내려가지 않습니다.

흙과 거름이 비바람에 의한 침식으로 쓸려내려가는 일이 없습니다.

구역을 나눠서 거름을 줄 수 있으니 효과적인 양 관리와 분배가 가능합니다.

▶ 좋은 토양을 쉽게 만들수 있습니다.

여러개의 틀밭 중 한두개를 비워서 퇴비를 만들수 있습니다. 만들어진 퇴비를 옮기기도 편해집니다.

작물 수확 후 남는 부산물을 모아서 퇴비를 만들기도 편해집니다.

농사에 좋지 않은 흙이 있는 곳이라도 짧은 시간에 좋은 밭을 만들수 있습니다.

▶ 혼작, 간작, 윤작 등이 편해집니다.

여러 종류의 작물을 같이 심거나 서로 도움이 되는 다른 작물들을 순환해서 재배하기가 무척 편해집니다.

이전 게시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혼작, 간작, 윤작은 땅의 영양성분을 보존하고,

해충과 천적간의 균형을 맞추고, 미생물의 다양성을 유지해서 특정 병원성 미생물의 대량번식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때는 쿠바에 대한 제한을 상당부분 풀었고,

카스트로와 회담이 이루어지며 관계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든 것은 이전 상태로 돌아가고 이동도 다시 차단됩니다.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 쿠바 정책을 아직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현재까지 쿠바와 미수교국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민간 차원의 교류는 막힘이 없기 때문에

주멕시코한국대사관이 쿠바 관련 업무를 같이 처리하고 있습니다.

쿠바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가 언제 완전히 풀릴지,

경제제재가 풀리고 화학비료와 농약이 싼 가격으로 들어오면 쿠바의 유기농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 다음에 계속됩니다 >

※ 저작권 논란을 피하기 위해 본문에 사용된 사진이나 그림은 외국사이트에서 가져옵니다.

물론 허락은 안받았습니다.

이 게시글은 가능한 카페 내에서만 소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