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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학(農學)

텃밭 토양 관리 - 10 (질소비료-1)

by 음악감독 2024. 4. 29.

네이버 카페 '지성아빠의 나눔세상' 에서 제가 2021년부터 연재하던 글입니다. 

여기로 복사해서 옮겨옵니다. 

 

 

 

다수확 농사비법? 이런 것은 아닙니다.

농사짓는데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생각되지만

읽고나면 뭔가 도움이 된 듯한, 그런 이야기를 적어 보려고 합니다.

내용이 이어지는 연재글입니다.

이전 게시글 확인 안하신 분들은 먼저 읽고 이 글을 읽으시는게 도움됩니다.

< 우리나라의 염초 >

⊙ 세종실록 55권, 세종 14년 2월 13일

상참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염초(焰硝)를 굽는 일은 그 공이 쉽지 않으며 저장된 것도 많지 않다. 만약 이것을 성(城)을 공격하고 진(陣)을 함락시키는 데 사용한다면 염초의 소비량은 매우 많을 것이다. 만약 저장하고 염초의 소비를 적게 하기 위하여 화포를 익히지 않는다면, 또한 필요한 시기를 당하여 응변(應變)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널리 염초를 준비하여 날마다 화포술을 연습하게 하려면 장차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니, 찬성 허조와 판서 신상이 아뢰기를,

"염초를 굽는 곳은 경상도·전라도·충청도의 세 곳뿐인데, 왜인들은 본래 성질이 간교(奸巧)하고 또 하도(下道)에 와서 사는 자도 많으니,

만약 그들이 그것의 굽는 기술을 본다면 반드시 능히 전습하여 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화(禍)를 장차 예측(豫測)할 수 없을 것이니, 마땅히 동계(東界) ·서계(西界) 양계에서도 또한 다 염초를 굽게 하며

항상 화포를 익히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염초 생산량을 어떻게 늘릴 것인지, 제조 과정에서 어떻게 보안 유지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염초는 화약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재료였습니다.

▶ 화약이 발명되고, 군사무기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전쟁의 양상은 크게 바뀝니다.

유럽 뿐만 아니라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에서도

화약을 만드는 재료를 찾고, 만드는 일이 국가적인 과제가 되었죠.

▶ 화약은 염초와 황, 숯을 섞어서 만듭니다.

그 중에서 황과 숯은 비교적 구하기가 쉬운 재료이지만

염초는 만들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모든 국가들은 염초 제조 기술을 극비에 붙이고 외부 유출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고려 말 최무선이 염초를 만들고 제조법을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도 본격적으로 화약을 군사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항상 염초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 당시에는 흙에서 염초를 얻었습니다.

아궁이나 구들장 밑 오래 묵은 흙더미, 변소 바닥의 흙더미, 처마 밑 흙이나 벽 아래의 흙을 맛보아서

짜고 시고 달고 매운 흙을 모읍니다.

거기다가 재를 섞고 오줌과 말똥을 가한 후 더운 김으로 흰 이끼가 띄워지도록 불로 달이고,

나무통에 넣고 물을 부어가면서 필요한 성분들을 걸러낸 후,

여러번 끓이고 식히는 것을 반복하여 결정을 만듭니다.

이렇게 염초를 만드는 방법을 취토법 이라고 불렀고,

염초의 재료가 되는 흙을 수집하는 병사들을 취토군 이라고 불렀습니다.

삽과 수레를 가지고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처마 밑과 변소 주변의 흙을 모두 파내서 가져가버리니

집은 엉망이 되었고 모두들 취토군을 싫어했습니다.

그 흙을 정제하여 극히 일부만 염초가 되었으니 생산성은 무척 낮았습니다.

급할때는 궁궐의 흙까지 모두 퍼내어서 염초를 만들기도 했지만 점점 커지는 수요를 따라갈 수는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인공적으로 염초 생산을 위한 염초밭을 만들어서 염초를 만들기도 했지만

이런 방법들은 대량 생산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방법들이었습니다.

▶ 우리나라가 전국을 쥐어짜듯이 염초 생산을 독려했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질 좋은 염초를 만들기 위한 염초토가 풍부해질만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넓은 평야가 많은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구도, 가축의 수도 절대적으로 부족했거든요.

염초토는 동물의 분변에 소변의 요소가 가해져서

장시간에 걸친 미생물의 분해과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었습니다.

< 질산칼륨 >

뜬금없는 우리나라의 염초 이야기에 당황하신 분들도 계실테지만

염초는 다름아닌 우리가 자주 쓰는 비료입니다.

▶ 염초는 질산칼륨(KNO3)을 부르던 이름입니다. 초석 이라고도 부릅니다.

질산칼륨은 칼륨이온(K+)질산염이온(NO3-)으로 만들어집니다.

질산염은 빗물과 배설물로 만들어지고

칼륨이온은 나무를 태운 재에 많이 들어 있습니다.

구체적인 원리는 몰랐지만

염초를 만들려는 노력은 질산칼륨을 만들기 위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려는 노력이었습니다.

▶ 질산염(NO3-)화약을 만드는데 쓰이기도 하고, 비료로 사용되기도 하는 물질입니다.

질소(N) 뒤에 산소(O)가 붙어있죠?

질산염은

화약의 연소과정에서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식물에게 꼭 필요한 질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상추나 무, 배추 등의 식물에 많이 남으면 사람에게 치명적인 독이 되기도 합니다.

질소는 식물이 자라는데 꼭 필요한 성분이고

이렇게

질산염(NO3-)의 형태로 존재하는 질소를 『질산태 질소』 라고 부릅니다.

좀 어려운 말이죠?

소와 소가 붙어있는 질산염 형의 질소를 질산태 질소 라고 부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질산태 질소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한 번 해보겠습니다.

▶ 얼마전에 베이루트에서 일어났던 큰 폭발사고를 기억하시나요?

수천명의 사상자를 낸 엄청나게 큰 폭발사고였죠.

그 원인은 질산암모늄 이었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암모니아의 질산염입니다.

질산암모늄도 훌륭한 질소비료로 사용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질산염은

화약을 만드는 원료로 사용되어 많은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되기도 하고

식물에게 꼭 필요한 질소를 제공함으로써 식물이 자라는데 큰 도움을 주는 비료가 되기도 합니다.

질소가 가지는 양면성이죠.

다들 질소비료를 어떻게 이해하고 계시나요?

질소가 그 형태에 따라 식물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복잡하고

질소가 다른 물질과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화합물도 너무나 복잡하고

그 결과로 나오는 질소비료의 종류도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질소비료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초기에 많은 노력을 들여서 만들어낸 질산칼륨은 차마 비료로 쓰일 수는 없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노력과 비용을 투자해야 만들 수 있는 물질이었거든요.

화약을 만드는데 쓰이기도 부족한 상황이었고, 화약은 곧 그 나라 전투력의 상징이었습니다.

< 유럽의 염초 >

화약의 등장은 전쟁의 양상을 크게 바꾸게 되고

화약과 화약무기가 없는 국가는 다른 국가들에 의해 쉽게 무너졌습니다.

몇 백만명의 인구를 가진 아즈텍 제국은 총과 대포를 가진 스페인 군사 500여명에게 무너졌고

잉카 제국도 화약무기에 맞서 창과 화살로 대응하다가 무너졌습니다.

영국은 북아메리카 지역에 상륙하여 화약무기로 사람들을 학살하고 식민지를 건설합니다.

화약을 만들고 사용할 기술이 없는 나라들은 다른 나라에 의해 멸망하는 시대가 펼쳐집니다.

고려 말

염초 제조 기술을 알아내고 연구하고 실험을 통해 질 좋은 화약을 완성한 최무선의 노력은

혼란스러운 시기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 유럽에서는 염초농장을 본격적으로 만들며 늘어나는 화약 수요를 충당했습니다.

긴 도랑을 만들어서

썩어가는 잎과 식물의 잔사와 소변을 붓고 석회암과 재를 섞어줍니다.

그리고 중간에 나뭇가지와 짚을 섞어서 공기가 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매주 소변 등의 배설물과 배수구의 물 등을 뿌려서

촉촉하게 유지하면서도 너무 젖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약 1년 정도 노력을 하면 충분히 익은 염초 재료가 완성됩니다.

 

건물 내부에서는 깨끗한 빗물을 준비하고 위에서 만든 퇴비더미에 들어있는 염초의 결정들을 녹인 다음

물을 끓여서 증발시키는 방법으로 염초를 추출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염초밭과 비슷한 공정이었습니다.

이 작업은 냄새가 무척 심하게 나는 작업이니 모두들 꺼리는 작업이기도 했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점점 많아지는 화약 사용량을 충당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 작업 방법은 독일에서 개발되어 곧 유럽 전역으로 보급됩니다.

▶ 염초(초석, 질산칼륨)가 땅에서 무진장 나오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만들 수 있었던 염초. 즉 초석.

힘들게 만들지 않아도 초석이 풍부한 곳이 있었습니다.

무굴제국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지금의 인도지역, 그 지역에는 무굴제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에서는 땅만 파도 초석이 쏟아져 나오는 곳이 많았습니다.

유럽에서 긴 전쟁이 벌어지면서 무굴제국은 초석 광산을 개발해서 유럽으로 수출을 하게 되고

면직물 수출과 향신료, 초석 수출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됩니다.

당시 기준으로 GDP 가 세계에서 제일 높은 나라는 무굴 제국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타지마할이 지어진 것도 이런 부유함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엄청난 양의 유럽 자본이 무굴 제국으로 들어오게 되고, 무굴 제국은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나라가 됩니다.

몸집이 커질대로 커진 유럽 각지의 제국들은 이런 무굴 제국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중심으로 그 지역에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세력을 넓히게 되고

결국 경쟁관계에 있던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유럽 국가들을 물리치고 초석 광산의 지배권을 확보합니다.

무굴 제국은 결국 영국에 멸망하고 식민지가 됩니다.

무굴 제국의 막대한 자원과 노동력은 영국의 힘을 더욱 키우게 되고,

이후 영국은 풍족한 자본과 화약을 바탕으로 전세계에 영향력을 넓히게 됩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국력은 지금의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면서 무한정 커집니다.

영국과 전쟁을 한다는 것은 영국이 관리하는 인도의 초석을 수입할수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 칠레 초석 >

▶ 구아노 를 아시나요?

개인 화기부터 거대한 대포에 이르기까지 화약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세계적인 침략전쟁과 자원수탈이 절정에 이르던 1800년대에

남미에서는 유럽의 강대국들이 군침을 흘릴만한 자원이 발견됩니다.

구아노 라고 불리는 엄청난 양의 초석 광산이 발견됩니다.

물론 존재는 알고 있던 것이었으니 그 가치가 새롭게 발견되었다고 이야기하는게 맞겠죠.

구아노 라는 것은

동물의 배설물이 점점 쌓여서 화석화된 광물질입니다.

전에 인회석과 인광석에 대해 말씀드렸죠? 구아노는 인광석의 한 종류입니다.

밭에 뿌리기만 해도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는, 구아노는 놀라운 천연 비료였습니다.

▲ 페루의 구아노 광산입니다.

토마스 맬서스가 『인구론』 이라는 책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므로 식량부족은 필연적이다."

라고 이야기한 대로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식량 생산량은 늘어나기 어려웠습니다.

▶ 1800년대에 독일의 화학자 리비히가 식물 영양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시작하고

질소가 식물의 필수 영양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정작 식물에게 질소를 공급할 수 있는 질산염은 땅에 너무나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대부분의 농경지는 황폐해지기 시작합니다.

신기하게도 뿌리에서 스스로 질산염을 만들어내는 식물인 콩 종류를 번갈아서 심으면서

어느정도 해결을 하기도 했지만,

동물들의 배설물을 밭에 뿌리는 것 이외에는 딱히 할수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영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광범위하게 기근이 발생하고

가지지 못한 농민들 중에서는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 1800년대 후반은 이런 상황이었으니

각국에서는 화약 생산을 늘리는 노력과 함께 식량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비료 확보 경쟁도 치열해지던 시기였습니다.

화학비료라는게 아직 나오기 전이니 모든 비료는 천연 비료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질이 좋고 양도 엄청나게 많은 질산염광산이 발견됩니다.

남미의 해안가에 있는 바닷새들이 수천년동안 배설물을 뿌리면서

대략 350km 정도의 길이로 초석을 만든 것입니다.

전 세계 열강들의 이목은

초석광산이 발견된 칠레와 볼리비아, 페루의 접경지역으로 향하게 됩니다.

비료 확보와 화약 재료 확보 경쟁은 그만큼 치열했습니다.

자원은 있지만 힘이 없던 나라의 결과는 뻔 한 것이었죠.

▶ 나폴레옹 전쟁 이후 스페인이 혼란에 빠지면서 중남아메리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축소되었고

많은 신생 독립국가들이 탄생합니다.

국경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력 충돌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초석 광산이 발견된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 지역은 원래 볼리비아의 영토였고, 태평양으로 진출 가능한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 위 지도의 중간에 Antofagasta 라고 적힌 곳이 문제의 그 지역. 안토파가스타 입니다.

인구부족에 시달리던 볼리비아는 이곳을 개발하기 위해 칠레 기업과 칠레인들을 부르고

25년간 세금을 면제해주는 조약을 체결합니다.

하지만 경제혼란으로 돈이 부족해진 볼리비아는 곧 조약을 깨고 세금을 부과합니다.

반발이 이어지자 아예 자산을 몰수해버립니다.

비록 볼리비아의 영토이긴 하지만 애써서 개발해놓은 광산을 그대로 빼앗긴 칠레는 분노했고

1879년 칠레가 군대를 일으켜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전쟁이 시작됩니다.

볼리비아와 페루는 원래 형제국이니 자동적으로 페루는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고,

페루에 투자금이 많았던 미국도 페루와 볼리비아의 편을 들며 이 전쟁을 중재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파나마운하가 없던 이 시절, 미국과의 거리는 너무 멀었고

이 때만 해도 미국은, 영국의 영향력에 비하면 별 볼일 없는 신흥 국가일 뿐이었습니다.

칠레는 "미국이 끼어들면 태평양 바닷속에 처박겠다"고 협박하기까지 할 정도의 기세였습니다.

칠레에게는 강력한 지원군이 있었거든요.

페루와 볼리비아는 이 자원을 국유화 해서 이익을 얻으려 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값싸게 자원을 얻으려던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강대국들은 칠레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게 됩니다.

칠레의 군대는 바다와 육지에서 동시에 페루와 볼리비아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태평양전쟁 혹은 초석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에서 결국 칠레는 페루와 볼리비아 연합에게 승리합니다.

전쟁에서 패한 댓가로

페루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지역을 칠레에 내어주고, 볼리비아는 해안지역을 내주며 내륙국가가 되는 수모를 겪습니다.

볼리비아는 지금까지 바다를 접하지 못하는 내륙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이후 전 세계의 열강들은

비료 생산과 고성능 화약 생산을 전적으로 칠레초석에 의존하게 됩니다.

칠레에는 관련된 산업이 크게 발달하게 되고 세계 각국에서 소비되는 비료의 3분의 2를 칠레가 공급합니다.

승전국이었던 칠레는 초석 수출로 큰 이익을 얻게 되지만, 그 번영도 금방 끝이 납니다.

자원 국유화를 추진하다가 미국의 세력을 업은 군부 쿠데타로 정권이 몰락하고 맙니다.

▶ 수백년에 걸친 자원 전쟁.

산업혁명 이후 인구는 계속 증가했지만 비료 부족으로 인한 식량문제에 발목이 잡힌 상태였습니다.

유럽과 미국 등의 강대국들이 식민지 쟁탈전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자원과 값싼 노동력, 그리고 물건을 내다 팔 수 있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였고

이 시기 가장 절실한 자원은 비료와 화약을 만들수 있는 질산염광물 이었습니다.

질산염은 그때까지 발전한 과학기술로도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건드리면 폭발할것 같았던 식량문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비료 쟁탈전은 막바지에 이릅니다.

< 세계대전과 암모니아 합성 >

▶ 공기중의 질소는 두 개의 원자가 단단히 붙어있는 N2 상태의 분자였고 그것은 그때의 기술로는 떼어낼수 없었습니다.

식물은 물에 녹아서 이온 상태로 존재하는 무기물만 흡수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었죠?

공기중에 있는 질소 분자는 식물이 결코 흡수할 수 없는 것이었고,

단단하게 붙어있는 질소 분자로는 다른 화합물을 만들수도 없었습니다.

질산염 광물은 사람이나 동물의 배설물과 미생물이 만나서 긴 시간에 걸쳐 만들어지는 것이었습니다.

▶ 예나 지금이나 전쟁에서는 자원확보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늦게 식민지 건설 경쟁에 뛰어든 독일은 모든 일에서 영국, 프랑스와 충돌하게 됩니다.

먹을 수 있는 식민지는 이미 거의 다 영국과 프랑스가 먹어버린 상황이니 독일이 끼어들 틈이 없었던거죠.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영국과 프랑스, 독일 사이에는 전쟁의 기운이 일기 시작합니다.

장차 영국과 전쟁이 벌어진다면

강력한 영국 해군의 해상 봉쇄로 칠레초석 수입길이 막혀버릴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독일의 애국심 강한 화학자들은 질산염의 인공적인 합성에 모든 노력을 다합니다.

칠레에서 나오는 질 좋은 초석이 아니라면

화약과 비료를 만들수도 없을만큼 칠레 초석에 많이 의존하는 상황이었거든요.

화약과 비료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은 곧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똥과 오줌을 이용해서 다시 화약을 만들기에는 세상의 규모가 너무 커져버렸습니다.

▶ 결국 프리츠 하버 라는 화학자에 의해

공기중의 질소를 분리해서 암모니아(NH3)를 만들어내는 기술이 독일에서 만들어집니다.

암모니아를 질산으로 바꾸는 공정은 이미 기술개발이 끝난 상태였고,

질산은 가성칼륨(수산화칼륨)과 반응시켜서 질산칼륨을 만들 수 있는 물질이었습니다.

암모니아의 인공적인 합성에 성공한 직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예상대로 영국은 해상 봉쇄를 단행하고 독일의 해상 무역길을 차단했지만

이런 기술적인 발전으로 인해 독일은 칠레초석을 수입하지 않고도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었습니다.

큰 전쟁이 일어나면서

생산된 암모니아의 대부분을 비료가 아닌 화약 만드는데 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굶주렸지만

결국 독일이 몇 년 더 전쟁을 수행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길어진 전쟁 때문에 수백만명이 더 사망하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1차 세계대전은 화학자들의 전쟁이었습니다.

▶ 질소는 공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체이기 때문에,

질소를 이용해서 화약과 비료를 만든다는 것은 공기를 이용해서 화약과 비료를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버는 공기에서 빵을 만들어낸 화학자로 칭송받았고, 질산칼륨 비료 덕분에 독일의 식량생산은 크게 늘었습니다.

전쟁이 터지자 화약을 만드는데도 이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하버는 공기에서 화약을 만드는 방법도 발견해낸 셈이었습니다.

결코 분리되지 않을 것 같았던 질소분자를 분리하고 암모니아를 만든 세계적인 사건.

바로 화학비료의 탄생입니다.

▶ 하버가 만든 암모니아 합성법 덕분에 인구는 정말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 전에 16억이던 세계 인구는 현재 70억 까지 늘어났습니다.

미국은 전쟁 중 비축했던 엄청난 양의 화약을 다시 비료로 바꿔서 세계에 공급하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 태어난 사람들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화약으로 만들어진 사람들'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유태인이자 독일인 프리츠 하버

암모니아 합성법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타기도 했고

독일 내에서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직장을 잃고 힘든 일을 많이 겪었으며

주위의 승전국들에게는 화학무기를 만든 전범으로 낙인찍히고 불행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화학비료의 시작은 질소비료였고

▷화학비료의 역사는 곧 화약과 전쟁의 역사 입니다.

< 다음에 계속됩니다 >

※ 저작권 논란을 피하기 위해 본문에 사용된 사진이나 그림은 외국사이트에서 가져옵니다.

물론 허락은 안받았습니다.

이 게시글은 가능한 카페 내에서만 소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